다시 한번 더 얘기하지만 여기에는 뭐 거창하게 자동차 산업이 어떻고 국내 처음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어떻고 그런 업무적인 이야기 보다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당시 여건이나 경험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솔솔 풀어나가라고 한다.
오전 일과가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해야 한다. 점심시간에 차를 반시간 가량 올고 나가 식사를 하고 다시 반시간 걸려 차로 회사에 돌아오던가 아니면 우리가 머무는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에서 밥을 스스로 해먹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점심 식사하러 직원들 모두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은 시간을 많이 뺏기고 돈도 많이 들어 주재원 과장 이하가 돌아가며 식사 당번하기로 정했다. 종합상사 주재원 대리 한 명을 포함해서 과장 이하 직원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전무님과 부장 한 분 그리고 종합상사 소속 차장은 열외로 예우를 해주었다. 여덟 명이 차례로 하루에 두 명씩 돌아가며 점심과 저녁식사 준비를 책임진다.
식사당번 날에는 자기 본연의 업무는 포기해야 한다. 아침은 각자 빵과 우유로 때우지만, 점심은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을 해먹으려면 당번이 수퍼마켓에 가서 음식재료를 사와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는데 수퍼마켓에 물건 사러 갔다 오면 오전 시간이 거의 다 간다. 당일치기로 장보기는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전날 장 보는 일이 많았다.
반찬거리 살 것을 메모해 가지만 이게 쉽게 되지 않는다. 김치가 먹고 싶어 양배추(김치 만드는 배추는 없었다), 파, 소금, 고추가루 등을 사왔다. 배추를 씻어 소금 뿌려 저리고 배추가 숨이 죽으면 간을 본 다음 고춧가루를 뿌리고 색깔이 비슷해지면 병에 담가둔다. 김치가 맛이 어떤가 하고 방금 담근 배추 조각을 하나 집어 입속에 넣어 보았다. 옛날 집에서 김장 담글 때 집어 먹던 김치 겉저리 맛을 생각하면서 입속에 넣자 이상한 맛과 냄새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빨간 가루는 고춧가루가 아니고 다른 양념 초 말린 것이었던 모양이다. 고춧가루 사는 것을 이렇게 한번 실수하고 또 몇 번을 실수를 반복한다. 이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네덜런드 어를 모르니 포장에 쓴 상품명을 알 수가 없다.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한다. 눈에 보기에 비슷한 것으로 몇 번 샀지만, 거푸 실수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서너번 실패 끝에 결국 고추가루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기분좋을 수가.. 고추가루 하나 가지고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래도 이런 고생을 하면서 식사 준비가 되면 주방 옆에 붙어 있는 사무실에 식사준비 완료를 알리면 모두 식당에 모인다. 한국에서 보내온 밑반찬에, 식사당번이 바뀌고 마켓에서 산 반찬거리도 다르고 암튼 솜씨와 재료가 다르니 맛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장님과 사장님은 "헛. 이건 또 뭐지? 너희들이 만드는 음식은 매일 다르냐?" 하면서 웃으시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잘 잡수시는 것을 보면서 짠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조직에서나 좀 이상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 주재원은 자기 식사당번 일에는 아무 소리 없이 식사준비를 하지만 이 중에 딱 한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외근(?)을 나간다. 외근인지 외출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나간다. 마음씨 순한 한 친구는 그 식사당번을 여러번 대신 해주는 것을 보았다. 난 그 사람을 삼십 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보았지만, 그 얌채스런 친구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런 것을 보고 캐릭터와 성격은 변치 않는구나고 생각한다.
때로는 주재원들이 자취하는 식사에 현지인 직원을 특별 초대하기도 했다. 우리와 그래도 친한 직원을 같이 식사하자고 부른다. 우리 식사메뉴는 이들이 먹는 식사하고는 아주 딴판이지만 사장실 비서였던 젊은 풋사과 같은 아가씨 페트라는 잘도 먹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방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가끔 끌이기 때문에 한국 음식 고유의 강한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잘 못 느끼더라도 이들한테는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어찌 보면 회사 망신시키는 일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직접 준비하시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해외 출장 중 한 곳에서 비슷한 생활을 해보았기에 더더욱 실감이 납니다ㅎㅎ
핑계를 대고 빠지는 사람 역시 어디나 있나봅니다. 자기 일할 때에는 일을 만들어서도 빠지는데,
다른 사람들이 할 때엔 절대 안빠지고 잘 먹죠ㅎㅎㅎ
댓글을 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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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7:5210년전 처음 회사 다닐때 생각해도 많은 해프닝이 기억나는데 34년이라면 정말 벼라별 해프닝을 다 겪으셨을듯 합니다.
2012/04/25 11:15잘 봤습니다 ^^
그때 우리들은 화란사람들이 보면 완전 화성인이었을 겁니다. ㅋㅋ
2012/04/25 12:19음식은 문화입니다만, 이런 경우에는 생존이죠. ㅎㅎㅎ 저는 이정도는 아니었지만 식재료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2012/04/25 02:48생존이란 말에 공감이 가네요. ㅎㅎ
2012/04/25 08:59ㅎㅎ늦은밤 보구 웃다가 갔는데 암튼 고춧가루 하나 찾기도 외국선 말이 안 통하니 시행착오 겪었을 그당시에
2012/04/24 08:15시절은 분명 옛날 옛적에 추억을 더듬 으셨을것 같네요 ㅎㅎ
자동차 이야기도 좋지만 전 이런 이야기가 훨 재밌네요 ㅎㅎ저도 담편 기대^
출사 잘 다녀 오시구요^
자운영님 같으면 꼬추가루 금방 찾았을텐데요.. ㅋㅋ 서너번 실패했던 거 같아요. 심각한 것 보다는 이런 웃지 못할 좌충우돌하며 망신당하는 이야기를 주로 쓰러고합니다. ㅎㅎ
2012/04/24 17:35너무너무 재밌습니다. 다음호가 벌써 기다려 지는데요? ㅋㅋ
2012/04/24 01:47재미있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2012/04/24 17:35직접 준비하시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2012/04/23 13:06해외 출장 중 한 곳에서 비슷한 생활을 해보았기에 더더욱 실감이 납니다ㅎㅎ
핑계를 대고 빠지는 사람 역시 어디나 있나봅니다. 자기 일할 때에는 일을 만들어서도 빠지는데,
다른 사람들이 할 때엔 절대 안빠지고 잘 먹죠ㅎㅎㅎ
밥하고 설걷이 하는거요? ㅋㅋ 꼴불견이죠, 뭐.
2012/04/23 22:49숙소 겸 사무실에서 식사당번까지... 요즘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2012/04/23 12:54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요즘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사표 쓸걸요? ㅎㅎ
2012/04/23 22:49풀칠아비님도 멋지게 한 주 지키세요.
앗...타향에서 직접 해드셨다니...^^
2012/04/23 11:30준비하기가 정말 만만치 않으셨을듯 하네요..
그나저나 그 얌채(?)분은 아직도 얌채이시겠지요? ^^
ㅋㅋ 그얘긴 괜히 썼네요.
2012/04/23 22:47타향살이에는 먹거리와 잠자리가 익숫하지 않아서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2012/04/23 08:02이땐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운게 한 두가지가 아니였던 것 같은데 그땐 잘도 견뎠어요 ^^
2012/04/23 10:23You know what, I'm very much ilncined to ag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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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7:36너무나 재미있는 그땐 그랬지 입니다^^
2012/04/23 02:53지금 생각해보면 되지도 않을 일을 한 게 너무많았죠. ㅎㅎ
2012/04/23 10:22Great stuff, you hpeeld me out so much!
2012/05/10 10:56